?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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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나를 창조하신 주님께 (1상)

지음 받은 것은 그것을 지은 이의 소유가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끝에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땐 다른 피조물과는 조금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공을 들이셨습니다. 히브리어로 ‘만든다’는 단어는 ‘야차르’(יצר)입니다. 히브리어 동사는 이처럼 보통 자음 셋으로 표현하는데, 여기 사람을 만드신다 했을 때는 첫 알파벳 ‘요드’( י )를 두 번 썼습니다.(ייצר) 히브리어 알파벳은 단독으로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요드’는 ‘손’의 형상을 딴 것으로 ‘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사람은 두 손으로 공교하게 지으셨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그 나누어주신 성품과 능력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때문에 하나님께 나를 드려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심히 마땅하고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Ⅱ. 나를 구속하신 주님께 (1중)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말씀하십니다. 한자로 ‘구속’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拘束과 救贖입니다.

소리는 같지만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앞의 구속(拘束)은 잡을 구(拘)에, 묶을 속(束)입니다. 자유롭게 가는 사람을 잡아다가 묶어 옥에 넣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구속(救贖)은 건질 구(救)에, 값을 치를 속(贖)입니다. 묶인 자를 그 몸값, 죄값을 치러 자유케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용된 것은 救贖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25절)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주님의 것이었는데 죄에게 팔렸습니다. 하나님이 파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에게 주권을 넘겨준 것입니다. 이에 마귀에게 묶이고 죄에 매인 자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다시 사셨습니다. 대속(代贖)의 은혜입니다. 이에 우리는 다시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주님께 드려 섬길 이유입니다.


Ⅲ. 나를 부르시는 주님께 (1하)

이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지명하여 불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어성경을 보면 “I have called you by name”이라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지으셨고, 우리 모두를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셨지만, 그러나 우리를 부르실 때는 공동체로 부르실 때도 있지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불러주십니다. 이것이 지명하여 부르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만남과 교제를 의미합니다. 또한 현재완료 시제를 사용했습니다. 한두 번의 만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첫 만남 이후로 줄곧 계속되는 만남입니다. 친밀한 사귐입니다. 이 사랑이 나를 기꺼이 주님께 드리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결혼한 부부는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하지 못하고 배우자가 주장한다 하였습니다. 사랑 하나만 가지고도 나를 배우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이전에 우리를 지으셨고, 예수의 피로 우리를 다시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주님께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